사주명리 '주말 스페셜'

'썬앤태임' 영화를 말한다

우리에겐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잘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제 칸 영화제에서 <만부키(좀도둑)가족>이란 작품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더군요. 마침  고레에다 감독의 2008년작 <걸어도 걸어도> 를 보고 며칠째 음미  중이었는데 이런 소식이 들려오니 뭔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걸요! 그래요! 오늘은 고레에다 감독이라는 사람의 타고난 기질과 잠재성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영화를 통해 느껴보죠.
 
먼저 영화 속으로
영화의 첫장면에서 노모(키키 키린이라는 이 배우는 고레에다 감독의 중반 이후 대부분의 작품에서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상작에도 출연했구요. 저는 <앙> 이라는 영화  이후 이 배우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는 오랜만에 모이는 가족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있습니다. 당근과 무 껍질을 벗기고 콩을 까고 밥을 짓고 돼지고기를 간장에 조리고 옥수수를 튀깁니다.  곧 어린 손주들의 웃음소리와 풍성한 식탁으로 채워진 이 공간이 죽은 장남의 기일을 추도하는 자리임이 밝혀집니다. 죽은 아들을 기리기 위해 산 자식들을 위한 음식을 장만하는 어머니.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놓인 아이러니의 현장입니다.
차남은 남편과 사별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는데요 그 여인과 그 여인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옵니다. 은퇴한 의사인 아버지는, 아이 딸린 여자의 재혼은 불가능하단 말을 그 여인 앞에 대놓고 할 정도로 직선적이고 고집스런 분입니다.  그러잖아도 평생 의사 아버지와 똑똑한 죽은 형때문에 주눅 들었던 차남은 이런 아버지가 정말 더 싫습니다.
 딸은 어리숙한 남편과 쾌활한 남매를 데리고 옵니다. 딸은 노모에게 이 집을 개조해서 들어오고 싶은 소망을  끊임없이 내비칩니다. 노모는 딸의 소망을 즐겁게, 열심히 들어 주면서도 속으로는, 죽은 장남이 살아있었다면 함께 살 뻔했던 이 집에  딸을  들이지는 않겠다고 조용히 생각합니다.
 할머니댁에 와서 너무 좋다는 손주들을 보며 아버지는 자신이 의사로 열심히 일해서 지은 이 집을 왜 모두 할머니집이라고 하느냐며 심통을 부립니다. 고집스럽고 퉁명스런, 은퇴했지만 영원히 원장님인 아버지! 그러나 이 날 아버지는 아내가 그런 자신이 저지른 불륜의 과거를 혼자 가슴에 묻고 살아왔음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이제 아버지는 비로소 진정한 주눅 든 삶이 무엇인지 조금은 더 깨닫게 되실 듯합니다.
장남의 기일에 10년째 찾아오는 청년이 있는데요 장남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살려낸 바로 그  청년입니다.  노모는, 그 청년이 100kg도 넘을 듯 살이 찌고 비지땀을 마룻바닥에까지 줄줄 흘리면서 자기가 사 온 양갱을 두 개나  먹고 보리차를 석 잔이나 마셨다며 혀를 찹니다.  아버지는, 예비 알바생인 백수에 지나지 않는 저 놈의 인생을 위해 장남이 귀한 목숨을 던졌다며 분노합니다. 이제 형의 기일에 저 청년은 더이상 오지않아도 되지 않겠냐는 차남의 말을 어머니는 단칼에 잘라버립니다. '저 녀석은 앞으로도 쭈욱 일 년에 한 번은 고통스러워야 한다'고 어머니는 말합니다. 그렇게 유머러스하고 지혜로운 어머니도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잔혹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게 어머니니까요.
차남의 아내에게 정성을 다하고 깎듯하게 대접하던 어머니는 그녀에게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기모노를 선물합니다. 그러면서 차남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지 말기를 바라는 뜻을 은근히 내비칩니다. 노모는 왠지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손주는 꺼려집니다. 어머니는 차남이 조만간 저 여인과 헤어지길 은근 기대해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노모는 유머를 아는  지혜로운 분입니다.

전직 의사였던 아버지는 이제 이웃을 응급처치할 수 없을 정도로 노인이 되셨습니다. 이제 그의 꿈은, 결코 인정하지는 않지만 차남의 여자가 데려온 아이와 차남과 함께 축구장에 가는 것입니다. 평생 의사 부인이었지만 지금 어머니의 유일한 소원은 아들이 모는 자가용을 타고 쇼핑하러 가는 것입니다. 차남은 자동차 판매원인 동서가 내미는 suv차량 광고지를 보며 조만간 어머니의 꿈을 자신이 이뤄드릴 수 있으리라, 그  꿈이란 게 뭐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파티는, 아니 추도식은 끝나고 3년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곧 어머니도 아버지를 따라가십니다. 물론 차남은 끝내 아버지의 꿈도 어머니의 꿈도 이뤄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게 세상의 모든 자식이  처한 현실입니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를 찾은 사람은 차남과 차남의 여인과 그녀가 데려온  아들과 차남과 여인 사이에 낳은 어린 딸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묘를 마치고 어쩌면 어머니를 태울 수 있었을지도 모를 suv를 타고 천천히 도시로 돌아갑니다.

이 작품에  반영된 고레에다 감독
영화는 잔잔하게 인물과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을 보여주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허를 찌릅니다. 전 이것을 고레에다 감독의 '의외성과 아이러니의 변주'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런 특징은 그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일관되게 나타나죠. 고레에다 감독 자체가 의외성과 아이러니로 가득한 사람 아닐까요?
 1960~1970년대생이라면 이 작품  속 일상과 풍경 속에서 자신의 유년기와 외가댁의 풍경들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아주 디테일한 장면과 대화들이 가득해요. 그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는 각자의 추억의 맛과 공간 속에 빠져들게 되죠. 전 이것을 고레에다 감독의 '기억이라는 마법'이라고 부릅니다. 조만간 감독의 첫데뷔작 <환상의 빛>도 소개할까 합니다. 아마 고레에다가 마법사라고 금새 알아채게 될 겁니다.
 감독은 섬세한 솜씨로 아름다운 장면들과 디테일한 일상을 묘사합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은 우리에게 내면의 성찰과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내죠.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가 만약 감독 자신을 반영한다면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감독은 '섬세하고 은근한 미를 아는 매우 성찰적인 사람'일  겁니다. 그는 직접 각본을 쓰거나 각본을 소설화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감독이면서 작가인거죠.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작업 형태를 고수하는 작가와 배우, 스텝, 모든 것을 지휘하는 영화라는 종합 예술을 펼치는 감독! 상반되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매우 꾸준히 해낼 수 있는 사람! 이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사람이군요. 

고레에다 감독의 사주 : 타고난 기질과 잠재력
지난 시간 일주(자신을 상징하며 사주의 기준이요 핵심인 기둥. 6월2일 쎄련된 사주명리 참조)에 대해 설명했죠. 그 일주는 다시 하늘과 땅의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중요한 건  하늘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을 일간-태어난 날(일)에 해당하는 하늘(천간)이란 말-이라고 합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일간은 나무입니다. 나무 중에서도 사람의 키를 넘지 않는 작은 나무나 덩굴이죠. 덩굴은 위로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퍼집니다. 자기를 결코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두를 수용하죠. 수백년 동안 위용을 과시하던 소나무는 전기톱으로 단번에 쓰러지지만 덩굴은 아무리 잘라도 또 자랍니다. 칼로는 잘 잘리지도 않아요.  큰 나무는 물이 없으면 말라죽지만 덩굴은 얼마든지 버티죠. 큰 나무는 반드시 태양의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덩굴은 은근한 빛 한 조각만으로도 그 힘이 엄청나져요.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작은 나무를 닮은 게 틀림없군요.
제가 볼 때 고레에다 감독은 이 나무가 두 개 나란히 겹쳐 있거나 그 곁에 태양을 지닌 것 같습니다. 사주에 이 작은 나무가 두 개 나란히 놓인 사람은 고독을 친구 삼아 살아가야 합니다. 뭔가 독보적인 일을 하는 직업군의 사람인거죠?  엄청난 끈기와 자립심은 당해낼 사람이 없죠. 게다가 태양이  곁에  있다면 이 사람은 큰 일을 칠 사람이에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같은 일 말입니다.^^

가끔 공인의 명식을 들여다 보는 일도 재미있겠는데요! 당분간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을 통해 고레에다 감독이 품고 있는 다른 카드들도 좀더 음미해볼까 합니다.  칸 영화제 수상을 축하하는 방법으로 꽤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