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12일 생 고3 학생들을 위하여
내담자 저희 아이는 일반고 인문계 고3 학생입니다.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해오고 있어서 큰 걱정이 없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아무개 엄마! 성격도 좋고 똑똑한 아이 둬서 얼마나 좋으냐고 부러움도 많이 샀고 저도 아이를 통해 엄마로서 기쁨을 많이 느끼면서 살아왔죠. 다재다능하고 뭐든 열심히 하는 아이라 진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어떤 학과나 직업이든 아이가 선택하는 것을 지지할 생각이거든요. 그런데 최근 걱정입니다. 저희 부부가 볼 때 아이가 예체능계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인문계 학과 중 하나를 선택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3월 모의고사 이후로 난데없이 영화 관련 전공을 하고 싶다며 관련 학교들을 검색하고 있는 거에요. 3월 모의고사 성적이 생각보다 안 나와서 그러나보다, 며칠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마음을 못 잡고 공부에 집중을 못하더니 결국 6월 모의고사도 목표 등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보다 못해 한 소리하면서 답답했는지 자신 없으면 낮은 학과라도 서울대를 가야하지 않겠느냐 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대 미학과나 철학과를 가겠다는 겁니다.
서울대 미학과, 철학과는 아무나 가나요? 지금 성적으로는 갈 수도 없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늘 중심이 잡혀 있던 아이가 뭐에 정신이 나갔는지 갈팡질팡하는 겁니다. 학교와 학과가 매일 바뀌는 거죠. 일단 점수를 올려야 어디든 갈테니 공부나 하라고 하면 축 늘어져서는 제 방으로 들어가버려요. 공부에 집중을 못하는 거죠. 저학년 때도 안 그랬는데 제일 중요한 고3 입시에 와서 저러니 믿거라 하고 있던 저와 남편은 요즘 너무 불안합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이고 음악이고 못 하는 게 없었어요. 글도 잘 쓰구요. 공부만 잘 하고 개성 없는 아이로 크지 않겠구나 싶어 좋아라했는데 요즘 같아서는 다재다능한 게 화근이었나 싶어 음악 듣고 있는 것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빨리 마음을 잡았으면 좋겠는데....
< 썬앤태임이 답변 >
어머니께서 속상해 하실 법합니다. 어머니의 아이 자랑이 그냥 자랑이 아니네요. 2000년 6월12일 생 학생들은 대체로 똑똑하고 지혜롭고 다재다능하며 성실하기까지 합니다. 옆집 엄마가 젤 좋아할 아이라고나 할까요? 어머니 말씀대로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시키는 것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잘 해내려고 노력하는 아이입니다.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누구나 자아가 정립되기 시작하지만 특히 이 아이는 초등6학년 무렵부터 자기 중심이 잡혀가기 시작합니다. 이 학생의 경우는 성장기의 특성이라기보다 본인의 타고난 기질 상의 변화로 봐야 합니다. 어려서 부모님 말씀을 잘 듣던 아이일수록 자아 정립기에 확 다른 모습이 나올 수 있는데요 이 아이의 경우 그런 측면이 더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다행이 고등학교 진학 무렵부터 공부에 대한 인식이 다시 들어오네요. 올해도 이 학생은 공부 운이 좋습니다. 이런 게 타고난 운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지내왔던 거구요. 그런데 문제가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터졌네요. 이유 있는 문제입니다.
이 학생의 재능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으로부터 나옵니다. 자신에 대한 강한 자존감이 공부에 대한 동기가 되고 공부와 일상에 충실하다보니 자신의 힘도 더욱 강해짐을 느꼈을겁니다. 이렇게 형성된 힘은 유유히 흘러 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과 예술적인 기질로 모입니다. 재능이 예술적인 기질로 모인다고 다 예술가나 연예인이 되는 것은 아니죠. 변호사나 의사 분들 중에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이며 다채롭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죠. 그렇게 멋지게 살 수 있는 측면이 많다는 겁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자신의 예술적인 재능을 수면 아래 가라앉히고 공부에 집중했을테죠. 성실하고 지혜로운 아이라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시기인줄 아는 이 학생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죠. 그러나 예술적인 본능은 더욱 억압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문제의 직접적 원인은 3월, 6월 모의고사의 성적 하락인데 이 상황이 자신에게 잊고 있던 예술적 재능에서 도피처를 찾게 한 듯합니다. 어쩌면 이게 도피처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비로소 제대로 알아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재능이 아니라 상황입니다. 바로 고3 6월 모의고사 직후라는 상황!! 이것이 모든 문제의 핵심입니다. 고3 학생들 이 말을 들으면 결국 고3 6월이니 잠자코 공부나 하라는 거구나라며 불평할 수 있습니다. 2000년 6월12일 학생 본인도 그렇게 생각되나요? 그렇다면 지금 학생은 자신의 그 좋은 지혜와 판단력이 상실된 게 확실하군요. 적어도 우리 학생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입니다.
2000년 6월 12일생 학생은 경영인이 되든, 법조인이 되든, 이과라면 의사가 되든 뭐든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전문직을 갖고 멋지게 살 수 있는 역량을 지녔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이 학생들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카드와 동일한 카드를 지닌 대표적인 사람이 배우 김태희와 의사겸 에세이스트인 남궁인이라면 좀 알아듣겠죠? 김태희야 제가 말할 필요 없고 남궁인 선생을 좀 예로 들까요? 의사이자 에세이스트로 얼마전에 보니 ‘어쩌다 어른’에까지 출현하고 책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부터 문학 관련 고정 칼럼까지 의사로서는 보기 드문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자신이 고3 때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의대에 간 운 좋은 케이스로, 노력형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의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면서 매일 거의 한 권, 적어도 일주일에 서너 권의 책을 읽고 몇 편의 칼럼을 쓰고 짬을 내서 다녀오는 짧은 여행도 잊지 않는 라이프의 소유자라면 그는 성실한 사람 아닌가요? 어떻게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이렇게 제대로, 즐겁게 해낼 수 있을까요? 기억하세요. 남궁인 선생을, 그가 의사로서 멋지고 바쁘게 살기 때문에 예로 든 게 아닙니다. 오늘의 주인공 2000년 6월12일 생 고3 학생을 상징하는 카드와 남궁인 선생을 상징하는 카드가 동일하기 때문에 예로 든 겁니다.
오늘의 주인공 학생이든 누구든 남궁인 선생같이 살면 참 멋지겠죠? 오늘의 주인공인 학생은 특히 그렇게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려면 어떤 학과를 갈까 고민하고 관심 있는 학과를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지금 상황은 매일 해야 하는 공부에 몰두하는 겁니다. 성적을 올리는데 최선을 다하세요. 그럼 법조인이 될지, 경영인이 될지 영화 감독이 될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생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테니까. 아!! 걱정 말세요. 2000년 6월12일 학생은 올해 공부 운이 가득합니다. 정말 다행이죠? 그러나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 시간을 계속 흘려보내면 그 운도 소용 없어요. 잊지 마세요. 지금 당장 책상 앞으로!!!